원로 한국화가 희재(希哉) 문장호 화백이 12일 오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6세. 나주 출신인 희재 문장호 화백은 18세때 의재 문하에 들어 '모아준법'이라는 독창적인 기법을 개발, 전통화법에 방향모색을 시도했다. 제16회 대한민국 미술전람회(국전) '수석특선'(문교부 장관상 수상), 제18회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특선' 등을 거쳐 초대작가와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희재는 현대 한국화협회 창립 발기인, 국제 예술문화교류협회 회장, 연진회장을 등을 역임하면서 미술문화발전과 후세 양성에 기여해 대한민국 옥관문화훈장을 수훈받았다. 제자로는 김대원 전 조선대 부총장을 비롯해 강현채 고화석 박희석 김인선 이동영 최현철 홍성국씨 등이 있다.유족으로는 부인과 3남 1녀가 있으며, 14일 오전 조선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한다. 한편 희재는 전통 남화의 맥을 이으면서도 실경을 바탕으로 독창적 세계를 확립했다. 특히 밑이 널찍하며 끝이 뾰족한 모아준법(茅芽峻法)을 개발하여 산수에 접목함으로써 자신의 개별성을 보여주었다. 붓끝을 공중에서 내리 찍거나 옆으로 삐쳐서 막 싹이 올라오는 ‘띠’ 모양의 모아준법은 산등성이나 그늘진 곳 어느 곳에서도 효과적인 터치로 부각되었다. 발묵 자체보다는 선과 점을 중시하여 준법을 많이 파괴해버리는 것이 특징이며 우리의 강산을 현대적 감각으로 표현하는데 진력했다.문장호는 성리학의 권위자요 한학자였던 조부 栗山 문창주로부터 한학과 사군자를 익혔으며 10살 때 중국 매월도를 임사할 정도로 그림에 재주를 보였다. 18세 때 외숙 이규필의 천거로 의재 허백련 문하에 들었다. 초창기 3년여 동안은 의재의 아우 목재 허행면으로부터 사군자와 산수를 배우다가 본격적으로 춘설헌에 머물면서 의재화법을 전수받았다. 국전 초대작가에 지정된 뒤에도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전통 바탕위에서 새로운 자신의 개성을 창출하기 위해 부단의 노력을 경주하였다. 전통적 관념산수를 멀리하고 철저한 실경묘사와 정확한 스케치를 중시한 것 등의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희재 문장호의 그림은 크게 세 차례의 변화를 겪는다. 1950년대와 1960년대는 남화의 전통계승시기로 이 무렵의 작품에서는 의재와 목재의 영향이 상당히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1970년대를 거치면서 관념대신 남도의 실경을 바탕으로 한 청묵법(청묵 바탕에 채색을 더하는 설채법의 하나)과 모아준법을 혼용한 그림들은 기법에서는 물론 구도상이 정형을 벗어버리고 참신한 자기의 세계를 일궈나게 된다. 목재의 탈 남화적 요소와 의재의 남화적 요소 결합한 창조의 세계이다. 특히 1990년대는 희재 예술의 완성기로 무등산에서부터 설악산, 백도, 거문도, 진도 ,관매도, 울릉도, 금강산 등의 현장 스케치 통해 현장의 감흥을 연출했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중심대상은 근접처리하고 심층적 묘사로 그 지역의 산세에 맞는 산수를 재창조한다. 특히 해박한 한학으로 그 날, 그 장소의 감흥을 화제(畵題)로 삼음으로써 생생한 현장감을 전해주었다. 실경에 대한 남다른 애착으로 국전 추천작품 ‘설악산 수렴동 계곡’과 ‘천보구여도(天保九如圖)’ 등 많은 역작을 남겼다. 반복된 필법과 준, 찰(擦, 문지르는 기법), 그리고 선도 아니고 점도 아니면서 붓을 부셔서 갈필로 단선효과를 나타낸 실경들은 희재 예술의 절정이다.희재 문장호는 노년으로 접어들면서 그림이 색이 더욱 밝아지고 선이나 먹의 사용도 극히 절제되어지는 한편 구도도 다양해지는 느낌이다. 색상도 쪽빛을 많이 사용하고 있음도 특징의 하나다. 또한 산수작가이면서 전통적 화조와 공필적(工筆的) 화조에도 관심을 가졌으며 선면예술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였다.전각에도 남다른 경지를 보여 전각 12도법을 해설한 전각해설서도 펴냈다. 또한 수묵회(樹墨會)라는 제자 모임을 만들어 많은 후학을 길러냈다. |